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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몽사 문고 44 <검둥이 피이터>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계몽사 문고 2021. 2. 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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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검둥이 피이터 / 비이헤르트 유경환

    원제: 정확히 알 수 없음

    저자 Ernst Wiechert, 1887.5.18-1950.8.24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비헤르트의 이 <검둥이 피이터>에는 지금까지 접해온 전형적인 동화집이나 민화집과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하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다만, 그러한 감상이 결국 극히 개인적인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에 여기에서 과하게 그 느낌을 적어내려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또 막상 40년 전 느꼈던 감동을 돌이켜보려 하니 글로 적기가 어려운 점도 적지 않게 있는 것 같다.

     

    독일어 권 밖에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는 작가인 듯한 비헤르트는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작품 속에서 많이 이야기했고 독일에서는 나치 정권에 의해 많은 박해를 받다가 나치 패망 후 새롭게 많은 조명을 받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나치 정권 말기 정상적인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 비헤르트는 검열을 피해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집을 쓰는 데 열중했는데 특히 1944년에서 1945년 사이 40여 편의 장편 동화를 지었다고 하며 아마도 그 중에서 7편이 여기 <검둥이 피이터>에 실린 듯 하다. 굳이 원전을 찾자면 1946년 발간된 <Märchen>이 되겠지만 <검둥이 피이터>에 실린 각 작품에 해당하는 독일어 원전은 지금의 내 역량으로서는 찾기가 어려워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번역자는 영어 전문 아동문학가 유경환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유경환이 독일어 원전을 가지고 거기에서 7편의 이야기를 골라 번역, 소개를 했다고는 보기 어렵고 역시 일본에서 먼저 나온 책을 중역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1940년에 이미 비헤르트의 작품이 소개된 바 있고, 1955년 이와나미 소년문고에서 <검둥이 페터(くろんぼのペーター)>라는 제목으로 国松孝二가 번역한 단편집이 발간되었다.  아마도 출판사와 번역자가 비헤르트의 작품들 중에서 임의로 작품들을 골라 단편집으로 엮은 것이 분명한데,

    그 수록 작품들이

    チビのドライベスト

    もうない

    モールマン

    くろんぼのペーター

    このでいちばん大切なもの

    의 7편으로 결국 99퍼센트 이 책을 그대로 가져다가 중역, 가공을 해 계몽사 문고에 실은 것으로 추측된다. 계몽사 문고의 다른 독일어권 책들의 번역 수준을 생각하면 사정이 있었겠지만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Peter라는 이름을 일본에서는 독일어권 발음에 맞춰 그대로 "페터"로 소개했지만 한국은 영어 발음으로 "피이터"로 소개한 건 이전 세대 전집보다 적지 않게 수준을 끌어올린 계몽사 문고로서는 실수라고 넘어가기에는 대단히 아쉽다.

     

    훗날 더 이야기하겠지만 국내 여러 출판사, 특히 동서 문화사의 <딱다구리 그레이트 북스>와 <에이브 전집> 등 많은 책과 전집들이 이와나미 소년문고의 작품은 물론 장정, 삽화, 그 양식까지 많은 부분에 빚을 졌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와나미 소년문고의 시대를 앞서간 감성과 그 개척 정신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동화책으로 보기에는 그 내용들이 너무나 파격적이기 때문에 가볍게 소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계몽사가 처음 소개를 했고 1991년에 이 책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금성사에서 주니어 현대세계문학전집에 실었다고는 하는데 제목만 남아있을 뿐 어디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일본에서 조차 비헤르트의 동화집은 이 책이 전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선은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Otfried Preußler)<크라바트(Krabat)>와 그 다음은 미하엘 엔데(Michael Ende)의 작품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흡사 먼 나라의 이야기 같은 몽환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의 환상 동화집들이 19세기 독일에서 많이 발표되었다면 20세기에는 이렇게 독일 깊은 어느 곳에서 실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에 환상인듯 현실인듯 깊이 스며들어 있는 그런 책들이 발표된 것이다.

       

    <검둥이 피이터>를 알게 된 후 느꼈던 여러가지 개인적인 감상과 상념을 어렵사리 한 줄로 줄여본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그저 수많은 책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이 세상에는 그렇게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있는 걸까."

     

    끝으로 <검둥이 피이터> 역자의 해설을 덧붙인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애정

    비헤흐트의 동화에는 저녁놀이 소리없이 사라지고 어둠이 깃드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 한편 마술사의 힘이 등장하며 온갖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도 깃들여 있습니다.

     

    비헤르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동프러시아 지방입니다. 동프러시아라고 하면 발트 해에 닿아 있는 독일 북동쪽인데, 떡갈나무,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이 많고, 또 갈대숲으로 덮인 늪이나 호수가 많은 곳입니다. 그리고 초라한 오막살이나 숯굽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바닷가에는 학이 날고, 갈매기가 지저귀고 있어, 이런 것들이 그의 동화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자기 고장을 한없이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런 만큼, 자기 고향의 분위기가 자연히 동화 속에 젖어들고 있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동화 속의 주인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비헤르트의 동화 속에 나오는 저녁놀이나, 그 놀이 사라지며 깃드는 어둠은 자기 고장에 대한 강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끊을 수 없는 애정과 희망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둠은 저녁의 어둠이 아니라 새벽의 어둠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우경 화백의 삽화가 아니었다면 이 책의 분위기를 그 만큼 살릴 수 있었을까?

     

    일본어 판 <검둥이 페터>

     

    에른스트 비헤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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