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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12 <보리와 임금님>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계몽사 소년소녀문학전집 2020. 9. 26. 11:10728x90
약간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보리와 임금님>에 수록된 작품의 한국어 제목과 영어 원제를 소개한다.
보리와 임금님
The King and the Corn
달을 갖고 싶어 하는 공주님
The King's Daughter Cries for the Moon
꼬마 케이트
Young Kate
금붕어
The Goldfish
클럼버 강아지
The Clumber Pup
가난한 섬의 기적
The Miracle of the Poor Island
복숭아나무에 입 맞춘 소녀
The Girl Who Kissed the Peach-Tree
서쪽 숲 나라
Westwoods
배럴 오르간
The Barrel-Organ
거인과 꼬마 사람
The Giant and the Mite
작은 재봉사
The Little Dressmaker
일곱째 공주님
The Seventh Princess
천국을 떠나다
Leaving Paradise
코네마라 당나귀
The Connemara Donkey
1페니어치 놀이
Pennyworth
모란앵무
The Lovebirds
생페리앤
San Fairy Ann
고마운 농부
Kind Farmer
부루퉁 할아버지와 소년
Old Surly and the Boy
패니키스
Pannyc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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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다소 길지만 이 책의 서문을 소개한다.
엘리너 파전의 책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우리 집에는 아주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방을 '작은 책 창고'라고 불렀다. 사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집의 방은 모두 서재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층에 있는 우리들 어린이 방도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래층 아버지의 서재도 책으로 꽉 차 있었다.
책은 그리고 식당의 벽을 메우고 어머니의 방과 계단을 올라가 여기저기 침실까지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시 우리들에게는 책 없이 생활하는 것보다 옷을 입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마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책이 가득 찬 온 집안의 어느 방보다도 책이 내 눈에 들어와 박힌 곳은 바로 '작은 책 창고'였다. 그것은 마치 꽃과 잡초가 가득 자란, 손질을 하지 않아 무질서하게 어우러져 있는 정원과 마찬가지였다. '작은 책 창고'는 정돈되어 있지 않았고, 아무 질서도 없었다.
우리집의 식당과 서재, 어린이 방이나 침실의 책들은 모두 잘 분류하고 정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작은 책 창고'에 있는 책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 곳에나 굴러다니는 책들, 계단 밑 잘 정돈된 책장에서 밀려난 책들, 아버지가 장터에서 한꺼번에 사오신 책 꾸러미에서 밀려난 책 등 잡다한 것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었다.
여기에는 잡동사니도 많았지만 그보다 가치 있는 것들이 더 많았다. 책이라면 아무 제한을 받지 않고, 아무 것이나 읽어도 됐던 어린이에게, 그 책들은 마치 복권이나 제비 뽑기처럼, 즐겁고 짜릿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작은 책 창고'의 창문은 열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언제나 먼지가 가득했다. 그 방의 창문을 통해 여름날의 햇빛이 뿌옇게 빛 줄기를 던지며 스며 들어왔다. 황금색 먼지들이 그 빛 줄기 속에서 춤추며 반짝거렸다. 그 방은 내게 마법의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 창문을 통해 나는 내가 사는 이 현실 세계와 시대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와 시대를 내다볼 수 있었다. 그곳은 시와 산문, 사실과 환상이 가득 뒤섞여 있는 그런 세계였다. 그 방에는 오래 된 연극과 역사, 과거의 로맨스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미신과 전설, 또 우리들이 흔히 '문학의 골동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남아 있었다.
<플로렌스의 방>이라는 책이 그 방에 있었다. 나는 그 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호프만 이야기>라는 책은 나에게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또 <호박 마녀>라는 책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 등장하는 마녀는 내가 좋아했던, 오래 된 요정 이야기에 나오는 마녀와는 전혀 닮지 않은 그런 마녀였다.
키가 벽 중간까지 닿은 그 방의 책장에는 온갖 종류의 책으로 가득차 자리가 좁았다. 다른 책들은 책장에서 밀려나와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마룻바닥에 작은 산더미를 이루어 쌓여 있는 책들과, 창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은 책더미들은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무너져 내리곤 했다.
표지를 들여다보며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한 권 두 권 끄집어내다 보면 어느 새 발 밑에는 거대한 파도가 쓸어온 것처럼 책들이 널려 있곤 했다. 먼저 마음을 사로잡았던 책은 벌써 버려두고 새로 잡힌 책에 마음을 빼앗겨 읽고는 했다. '작은 책 창고'에서 나는 찰스 램과 마찬가지로 책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이면 무엇이나 읽는 버릇이 들었다.
마루에 쪼그리고 앉거나 책장에 기댄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정신없이 책을 읽노라면 몸이 무척 불편하다. 코에 먼지가 들어가고 눈도 아프다.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환상의 세계에 흠뻑 빠져 헤매다, 또는 사실이 환상보다 훨씬 흥미로운 세계를 탐험하다가 - 나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내 거북한 자세와 매캐한 공기를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당시 가끔 목이 아프곤 했다. 아마 그렇게 아팠던 일 가운데 적어도 몇 번 정도는 '작은 책 창고'에 있던 그 먼지의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햇빛이 들어와 춤추던 그 방의 뿌연 유리창은 한 번도 닦은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마루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려고 누군가 비와 걸레를 갖고 들어온 일도 없었다. 그 먼지와 티끌이 없었더라면 그 '작은 책 창고'는 그렇게까지 그리운 추억의 방으로 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가득 뿌려진 깨알처럼 무수히 빛나는 작은 별들처럼, 금가루처럼, 아니면 양치식물처럼 빛나던 그 먼지들... 그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다시 흙 속으로 떨어져 히아신스 꽃으로 피어났으리라.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이것을 '이 고요한 먼지'라고 노래했다.
이 고요한 먼지는
신사와 숙녀, 젊은 청년과 아가씨
그리고 웃음과 재주와 한숨
아가씨들의 옷과 고수머리이리라
영국의 시인 바이올라 메널 역시 '낮 동안 살며시 찾아와 떨어져' 선반에 쌓인 반짝이는 먼지를 불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아! 하지만
내가 돌아다니면서 닦아내는 이 먼지들은
꽃들이고, 왕들이라네
솔로몬의 신전이며, 노래하는 시인들
또 니느웨의 추억들이건만...
마침내 눈이 아파서 '작은 책 창고'를 살금살금 걸어 나오다 보면, 내 머리 속에는 아직 햇빛이 반짝이는 금가루들이 춤추고 있었다. 마음 속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거미줄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하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내가 직접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거기에 꾸며 낸 이야기와 사실들,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옛날의 그 먼지 속에서 생겨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그 가운데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환상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
일곱 처녀가 일곱 개의 빗자루를 들고 50년 동안이나 계속 쓸어댔지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그 신전들과 꽃송이들, 왕들, 아가씨들의 고수머리, 시인들의 한숨, 젊은 청년들과 아가씨들의 웃음소리를 끝내 쓸어내지는 못했다. 책이 있는 작은 방이면 그 처녀들이 굴뚝 청소부처럼 어김없이 찾아와 마음의 불을 밝히고 그렇게도 먼지를 쓸어내려 했건만...
1955년 5월 햄스테드에서
엘리너 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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