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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ABE문고 기획관련자와 인터뷰까지 했던 경험이 있는 관계로 덧글을 답니다. 짧은 전화&서면 인터뷰였지만, 당시 그 출판사가 운동권출신들이 모여 만든 출판사여서 자연스럽게 그런 의식(?)이 있는 분들이 좋게 읽었던 책들을 추천하면서 그게 모여서 문고가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일본판 문고를 중역하는게 대다수였던 그 시절에(그런 문고들 많았죠. 삼중당이나 계림문고나같은) ABE문고는 일본판 문고를 배낀게 아니라 기본 골조는 영미권 문고선집에 출판사 사장님과 주변분들의 추천으로 끼어들어간 책들이 추가됐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책은 당시 유럽에서 유학하셨던 인문학도분들이 가져와서 직접 번역하거나 한 것들도 끼어있었다고...
그분의 그 설명을 듣고 나니 몇 가지 그제서야 이해되는게 있더군요. 책들의 번역수준이 고르지 않았던 거나, 역자의 이름이나 약력이 가명과 가짜 약력이었던 것이라던가....(이것 때문에 역자를 찾기가 어려워서 관계자 수소문이 어려웠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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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한 글은 이 전집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던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가져온 것이다. 출판사인 동서문화사 자체가 여러 가지 면에서 묘한 기행이나 소문 등으로 조금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라 그 곳의 관계자와 직접 접촉했다는 내용 때문에 게시글이 올라왔을 때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었다.
그러나.....
"의식 있는 운동권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출판사였다, 자신들이 읽었던 책, 그러니까 "원서"들을 추천하여 ABE 전집이 되었다. ABE 전집은 일본판 문고를 배낀 게 아니라 영미권 문고선집을 바탕으로 출판사 사장과 주변 사람들의 추천작들이 추가된 것이다. 책은 유럽에서 유학했던 인문학도들이 가져와 직접 번역한 것들도 있었다"라는 주장은 앞으로 ABE 전집을 소개하면서 알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우선, 아직까지는 확인중이지만 ABE 전집 전 88권 중 일본에서 이미 출간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동서문화사 특유의 "표지만 전혀 관계없는 사진/그림으로 바꿔치기"가 많기는 하지만 개중에는 60-70년대의 관행이었던, 그리고 계몽사가 일찌감치 앞장서 바꿔나가고 있었던 "제목"만 한글로 표기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다 가져오는 "가공"하는 과정을 통해 ABE 전집으로 둔갑한 책들도 상당수다.
그저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의 전집들이 "전집" 자체를 통채로 가져오는 일이 많았다면 ABE 전집은 일본의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하게 책을 골라왔다는 정도인데, 그나마도 이와나미 서점의 책들이 대다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영어권 작품들의 경우 번역자들의 면면이 가공 혹은 가명의 번역자가 아닌 인터넷에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꽤 알려진 영문학자나 관련 인물들인 경우가 많은데 이 사람들의 경우 과연 영어 원서를 가져다 작업을 했을지, 아니면 나이와 세대를 고려하건데 애초에 일본어가 영어만큼 익숙해서 영어를 할 수 있음에도 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본어 원서를 가져다 번역을 했는지까지는 잘 알 수 없다. 그 밖의 다른 언어권의 경우, 특히 당시만 해도 대단히 생소했던 소비에트 연방이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책들을 원서를 가져와 번역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동서 문화사의 ABE 전집은 그 동안 한국의 청소년/아동 문학 전집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책들을 소개한 공이 크며 그 만큼 수 많은 70-80세대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주고 지금까지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이미 그 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이런 세계의 다양한 작품들을 자국의 청소년/아동들에게 알리고 소개하려 했던 일본 출판사들의 노력과 역량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사진속 책의 원래 이탈리아어 제목은 <Ricordi di Scuola> 로 우리말로 하면 "학교에 대한 추억"쯤이 된다. 주인공이 교사이나 "학창 시절의 추억"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 제목은 <나의 학교>이며 여기에 동서문화사는 "나의 선생"을 슬쩍 덧붙였을 뿐이다. 장정, 겉표지, 삽화 제목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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