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횃불을 들고
11. 횃불을 들고(The Lantern Bearers) 1959
로즈마리 서트클리프(Rosemary Sutcliff), 공덕룡 역
번역자 공덕룡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뉴욕 주립대학 대학원을 수학하였다. 동대학에서 초빙 교수로 한국문학, 일본문학을 강의하였고 단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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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실린 소개글
이 글의 주인공 아퀼라는 브리튼(지금의 영국)이 '바다의 이리 떼'들의 침입으로 그 때까지의 평화를 위협받아 로마문명이 꽃피던 밝음 속에서 야만족이 지배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살던 한 젊은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에 태어난 이퀼라는 야만족 때문에 사랑하던 집안 식구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이윽고 브리튼 군 장교가 되어 대승리를 거둘 때까지의 긴 세월 동안 이러한 밝음과 어둠이 엇갈리는 것을 경험한다.
브리튼 섬이 로마의 세력 밑에 들어가 그 한 주처럼 된 것은 2세기 첫 무렵이었다. 독수리의 깃발을 든 로마 군단은 브리튼 남부와 중부를 정복하여 그 곳에 머물렀다. 그 곳에 살던 브리튼 사람들은 로마 문명을 받아들여서 로마처럼 되었고 한편 소수의 정복자였던 로마 군단도 오랫동안 천천히 브리튼 사람으로 변해 갔다. 놀랍게도 450년 동안이나 주둔했으니까, 이름은 로마 군단이라도 사실은 브리튼 사람들이 군대의 주력이 된 것이다.
이러한 로마 군단을 지방 군단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지방 군단 병사들은 정복자인 로마와 자기네들이 태어난 고향인 브리튼 양쪽에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될 기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아퀼라도 로마와 브리튼 사이에서 방황 하다가 마침내 브리튼 인으로 살 결심을 하고 로마 군단을 떠난다. 한편, 로마 군단은 그리튼 섬의 남부, 중부를 정복하여 로마처럼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완강하게 저항하는 복쪽 켈트 족에게는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따라서 늘 북쪽 여러 부족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3세기가 되자 유럽 대륙에서 게르만 민족의 한 파인 색슨 족이 새로 브리튼 섬으로 쳐들어오게 되었다. 이것이 이 이야기 속에서 '바다의 이리'라고 불리는 무리들이다.
더구나 북쪽 켈트 족의 세력은 시들기는 커녕 점점 커져 브리튼의 한 부족장 보티건은 '독은 독으로 누른다'는 작적은 세워 색슨 사람에게 북쪽 켈트 부족을 누르게 할 생각으로 영토를 준다는 약속아래 헹기스트와 그 동생 호르사를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에 나오는 행기스트와 보티건은 역사상 정말 있었던 사람들이다. 보티건의 계책은 처음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생각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헹기스트의 지휘를 받는 색슨세력은 점점 커져 차차 거꾸로 브리튼 사람을 억누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의 역사가 말해 주듯 끝내는 그들이 이섬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오래 전부터 바탕이 흔들리던 대로마 제국도 브리튼에서 군단을 불러들여 본국 방비를 시켜야만 하게 될 지경에 빠지고 만다. 이렇게 하여 로마의 독수리는 450년이나 지배하던 곳을 버리고 홀홀히 브리튼에서 떠나 버린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로마 군단을 떠난 아퀼라에게 닥쳐온 갖가지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주는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에는 공통된 점이 많으며, 열심히 성실하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는 그가 어느 시대 사람이건 상관없이 많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가 이 작품에서 얘기하려 했던 것도 밝음과 어두움이 엇갈리는 시대에 횃불을 들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답고 꿋꿋한 모습이며, 그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 준다.
로즈마리 서트클리프는 1920년 해군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2살 때부터 다리와 팔을 제대로 못써 몸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 교육은 고작 몇 년밖에 받지 못했고 나머지는 독학으로 교양을 쌓았다. 처음 화가가 될 작정으로 공부하던 서트클리프는 우연한 일로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재능을 꽃피웠다. 1959년 이 '횃불을 들고'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카네기 상 수상작으로 뽑았다. 이 수상을 계기로 서트클리프의 글은 점점 무르익어 오늘날에는 역사 소설가로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서트클리프의 작가로서의특징은 첫째, 그 뛰어나고 풍부한 상상력에 있다. 이 이야기에서 서트클리프는 시대의 움직임과 주인공의 운명을 조금도 어긋남 없이 겹치게 하여, 역사가 지닌 의미를 떠오르게 하고 있다. 또한 이 긴 세월에 걸친 이야기를 단순한 사건의 보고에 끝내지 않고 주인공 아퀼라를 비롯하여 그 아내 네스, 알토스 같은 여러 인물의 마음 속까지 환히 그려 내 문학 작품으로서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